“생의 불꽃으로” 전시를 열며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설악면 산중 작업실에 둥지를 튼 지 23년, 바람, 비, 눈, 햇살이 만들어내는 대자연의 기운을 몸소 겪으며 오랜 시간 직관으로 자연을 관찰하고 명상하면서 주변 풍경을 온몸으로 기억해왔습니다. 바람은 그 허허로움과 자유로움 때문에 20여 년 간 내 작품의 주제가 되었습니다.

 2016년 개인전은 ‘바람’ 작업의 마지막 전시가 되었습니다. 그 후 새로운 작업을 실험하던 어느 한 겨울 작업실 난로의 타닥타닥 타고 있는 장작의 불꽃을 바라보며 그 불꽃에 매혹되었습니다. 그리고 불을 나의 작업에 도입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수많은 작품을 실험하는 긴 시간을 보내다 마침내 새로운 불꽃 작품이 탄생되었습니다.

 내 작품의 주제는 세상을 이루는 지(地) 수(水) 화(火) 풍(風)에서 기원합니다. 흙과 물, 불과 바람으로 인해 대자연과 생명체의 존재가 가능합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화(火), 불을 모티브로 삼아 자연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생동을 표현하고자 하였습니다. 불, 불꽃을 통해 이른바 생명체가 발산하는 호흡, 혼과 같은 것을 시각화하였습니다.

  캔버스가 타지 않게 밑 작업을 하고, 이때 물감의 질료성이 기화하거나 물결처럼 유동하면서 어떤 미지의 이미지가 태어납니다. 완성된 밑그림 위에 한지로 전체를 메운 후 불로 태워나갑니다. 불꽃은 산소와 결합하여 캔버스 전체를 너울너울 흘러 다니며 새로운 세상을 만듭니다. 불꽃 작업은 경이로웠습니다. 그것은  스스로 소멸되고 생성되어간 세계, 이른바 자연처럼, 생명체처럼 스스로 완성되어간 세계입니다. 불꽃 사이로 문득 문득 캔버스의 새로운 풍경이 다가오고 사라집니다. 그것은 땅, 하늘, 물, 구름의 자취이기도 합니다. 캔버스는 우주 삼라만상의 형상들로 나타나 스스로 존재합니다.

 거대한 불꽃의 흐름은 나의 의도를 초월하여 스스로 타들어 가면서 캔버스의 표면을 다 태우고 미지의 세계로 다시 태어납니다. 나의 캔버스는 제 2의 자연이 되어 보이지 않는 나의 심연에 내재되어 있는 무의식 혹은 잠재의식이 불의 매체를 통하여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것은 내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무릉도원 또는 nirvana였습니다. 이렇게 완성된 불꽃 작업은  소멸과 생성을 통한 결국 ‘생의 불꽃으로’ 정의해 봅니다.

 저의 무릉도원을 여러분과 함께 누리고 싶습니다.

 2019년 8월, 추  경

생의불꽃 Life of Flame No.1908-5 140*77(cm)fire, hanji, charcoal, pigment, stone powder on canvas, 2019

생의 불꽃 Life of Flame No.1902-1, 82*45(cm), fire, hanji, charcoal, pigment, stone powder on canvas, 2019

생의 불꽃, Life of Flame No.1912-6, 180*90(cm), fire, hanji, charcoal, pigment, stone powder on canvas, 2019

생의 불꽃, Life of Flame No.1912-2, 180*90(cm), fire, hanji, charcoal, pigment, stone powder on canvas, 2019

생의 불꽃, Life of Flame No.1905-3, 122*60(cm), fire, hanji, charcoal, pigment, stone powder on panel, 2019

생의 불꽃, Life of Flame No.1903-1, 122*73(cm), fire, hanji, charcoal, pigment, stone powder on canvas, 2019

생의 불꽃, Life of Flame No.1912-10, 180*90(cm), fire, hanji, charcoal, pigment, stone powder on canvas, 2019

생의 불꽃, Life of Flame No.1908-3, 145*73(cm), fire, hanji, charcoal, pigment, stone powder on canvas, 2019

생의 불꽃, Life of Flame No.1905-4, 122*73(cm), fire, hanji, charcoal, pigment, stone powder on panel,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