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 개인전
2024. 9.1-9.29
‘불(火)’을 통해 예술로 승화하다.
추경 작가는 가평, 자신의 작업실에서 자연과 더불어 작업한다. 물질의 본질에 대해 더듬어 나가며 자신의 예술 세계를 완성해 나아가고 있다. 특히, 그는 ‘불(火)’이란 모티브를 통해 생명이 발화하고 생성하는 과정을 시각화하며 자연의 기운을 표현하였다. 작가가 소재로 선택한 한지는 주제를 더 돋보이게 한다. 그는 한지를 불로 태워 그 형태를 변형하고 소멸하여 작품으로 재창조한다. 한지를 불에 태우는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결과물이 나오고 우리는 새로운 조형적 이미지를 만난다. 한지가 불에 타고 남은 그을린 흔적들은 다시 작품이 되었다.
소멸을 통한 예술
추경 작가는 자연을 깊이 관찰하고 그 본질을 작품으로 승화하기 위해 지(地), 수(水), 화(火), 풍(風)에서 세상의 기원을 찾는다. 그는 흙과 물, 불, 바람을 통해 대자연과 생명체가 존재하고 유지될 수 있다고 본다. 작가는 특히, 불을 모티브를 삼아 불의 기운을 작품에 표현하고 있다. 그는 먼저 캔버스 위에 돌가루를 엷게 바른 후 물감으로 밑작업을 한다. 이는 캔버스가 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물감은 질료적 특성상 기화하거나 물결처럼 유동하면서 미지의 이미지들을 생성한다. 이렇게 완성된 밑그림 위에 작가는 한지로 전체를 덮은 뒤, 물 이미지의 그림을 그린 후, 그림이 적당히 건조되면 불을 이용하여 한지를 태운다. 불꽃은 산소와 결합하면서 캔버스 전체를 훑으며 새로운 조형적 언어를 만들어 간다. 불꽃이 지나가며 이루는 경이로운 터치는 바로 시각화되어 작품이 된다.
불꽃은 스스로 소멸하고 생성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생명의 형태를 완성해간다. 이것은 추경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자연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하나의 풍경이다. 작가의 의도를 초월한 새로운 세계는 우연을 통해 형성된 모양과 더불어 심연에 내재된 무의식, 잠재의식이 불을 통해 예술로 승화하는 과정에서 창조된 것이다.
불이 주는 우연적 형성은 조형예술의 위험을 동반한다. 작품활동 중에는 불을 다루는 숙련도와 더불어 주의가 필요하다. 작가는 불의 특성와 역동성을 잘 이해하고 통제해야하기 때문에 작가 스스로 숙련된 작업을 진행하면서 불의 움직임이나 소멸하는 과정을 통해 삶과 죽음, 생성과 변화에 대한 철학적 사고를 살라내고 녹여내는 조형예술을 하고 있다.
불꽃의 이상향
한지를 태워 완성하는 그의 작품을 대할 때 우리는 작가 심연에 있는 내면적 이상을 드러낸 실체를 볼 수 있다. 그의 작업은 자연을 바라보는 그의 내면이 불과 한지의 독특한 결합으로 인해 생긴 변화를 시각적으로 표상하고 있다. 이는 동시에 물질의 본질을 독창적으로 드러냈다. 한지에 붙은 불꽃 자체가 드로잉을 형성하며 캔버스 전체를 흐르면서 마침내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다. 불의 드로잉은 추경 작가가 접한 자연처럼, 혹은 생명체처럼 스스로를 만들어 가고 있으며, 새로운 세계를 목도하면서 캔버스 위에 예술적 행위로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눈 앞에 펼처진 자연으로부터 생명력을 느끼듯이 추경 작가는 작가 스스로 추상적 지표를 포착하여 자연의 본질을 대한 숨김 없는 이야기들을 불꽃을 통해 보여준다. 자연이 전하는 무수한 이야기들이 불꽃으로 인해 한지에 조형적 형상들로 드러나며, 이러한 형상들이 작가의 세계 내에서 불태워진 한자의 파편들로 재질서화된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을 감상하다보면 사실적 형상과 재현 사이에 있는 간극을 통해 무의식적 행위에서 유기적으로 얽힌 새로운 조화를 볼 수 있다. 우리는 그의 작품이 보여주는 예술 행위를 통해 본질을 탐구하면서 자연이 주는 평안과 조화를 표상하는 예술의 아우라를 볼 수 있다. .
불이라는 매체로 작업을 하면서 표현된 작품은 매우 자연적이다. 한지를 바른 뒤에 불로 태운 후에 상상치 못한 결과물들을 보면 환희를 느끼며, 인간이 오랫동안 꿈꿔왔던 무릉도원같은 유토피아를 찾게 된다. 그의 작업방식은 자연을 관찰하고 사유하면서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독창적인 조형 기법과 조형 언어를 만들어 낸다.
추경 작가는 우리가 익숙하게 누리고 있는 기존의 예술작품에서 나타나는 이해와 관습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한지의 무한성을 엿보며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존재에 대한 물음과 동시에 파괴와 생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고 있다. 이번 추경 작가의 전시를 통해 독특한(singularité) 예술적 가능성을 통해 소멸과 존재에 대해 열린 가치를 부여해 볼 수 있다.
휴관안내: 9월 16(월)~18(수) 휴관
입장료 5,000원 (가평군민 50%)